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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에너지

[에너지 인사이트] 고리 3·4호기 재가동이 던진 메시지

2026-10-28

고리원자력발전소 전경 (오른쪽 부터 순서대로 1호기~4호기)/한국수력원자력 자료

[투데이에너지 장재진 주필]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가 설계수명 만료로 잠시 가동을 멈췄던 고리 원자력발전소 3·4호기의 10년 계속운전(수명연장) 허가안을 최종 승인했다.

고리 1호기 영구 정지 이후 한때 ‘탈원전’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고리 원전 부지가 다시금 대한민국 에너지 공급의 핵심 기지로 복귀하게 된 것이다.

이번 결정은 단순히 노후 원전의 수명을 연장하는 실무적 조치를 넘어선다. 첨단산업 선점을 위한 전력 확보라는 국가적 생존 전략과 맞물려 있는 대한민국 원전 정책 ‘유턴(U-Turn)’의 결정적 변곡점이자 변할 수 없는 이정표다.

고리 3·4호기 재가동이 가지는 가장 일차적인 의미는 기후위기 대응과 첨단산업 지원을 위한 '현실적 대안'의 확보다.

최근 세계 경제는 반도체, 인공지능(AI), 초거대 데이터센터 등 이른바 ‘전력 대식가’로 불리는 미래 첨단산업 선점 경쟁으로 뜨겁다. 이들 산업의 폭발적인 성장으로 인해 전력 수요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동시에 글로벌 탄소중립 기준인 'RE100'이나 'CFE(무탄소 에너지)'를 충족해야 하는 무거운 국제적 과제도 안고 있다.

이러한 고차방정식 상황에서 가동 비용이 저렴하면서도 기후 변화를 유발하는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기저부하 전원으로서 원전의 가치는 다시금 주목받을 수밖에 없다. 무작정 신규 원전을 건설하기에는 천문학적인 비용과 최소 10년 이상의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만큼, 기존의 검증된 원전을 철저히 고쳐 쓰는 '계속운전'은 국가 에너지 안보와 경제성 측면에서 거부하기 힘든 카드가 된 셈이다.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이 계속운전이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뒷받침해 국가 경제에 기여하고 탄소중립에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 강조한 배경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

이번 승인은 또한 대한민국 원전 정책이 본격적으로 ‘수명 연장’의 보편화 궤도에 진입했음을 시사한다. 이미 한수원은 2030년까지 운영허가가 만료되는 원전 10기에 대해 규제기관에 계속운전을 신청한 상태다.

이번 고리 3·4호기의 물꼬를 시작으로 현재 가동이 중단된 한빛 1·2호기를 비롯해 월성 2·3·4호기, 한울 1·2호기 등 줄줄이 대기 중인 후속 원전들의 심사 역시 한층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과거 원전의 수명 연장이 정치적 공방 속에 예외적으로 이루어지던 전례와 달리, 이제는 국가 에너지 믹스를 구성하는 하나의 정례적인 제도로 자리 잡는 모양새다.

그러나 이 화려한 부활의 서막 이면에는 우리가 반드시 넘어야 할 무거운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가장 큰 걸림돌은 단연 ‘안전성에 대한 국민적 신뢰 확보’다.

이번 원안위 심의 과정에서도 표결 결과(찬성 5명, 반대 2명)가 보여주듯 내부 위원들 사이에서조차 치열한 의견 대립이 있었다고 한다. 반대 입장을 피력한 위원들은 중대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사고관리계획서와 계속운전을 위한 방사선환경영향평가의 연계성이 부족하다는 점을 꼬집었다.

아울러 대형 원전 사고 이후 정립된 최신 기술기준을 노후 원전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논리적 일관성이 부족하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규제기관 내부에서조차 완벽한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는 사실은 향후 가동될 노후 원전의 안전성에 대한 우려를 완벽히 불식시키지 못했음을 방증한다.

시민사회와 부·울·경 지역 주민들의 거센 반발 역시 단순한 지역 이기주의로 치부하기 어렵다. 부산 기장군 일대는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다수의 원전이 빽빽하게 밀집한 초고밀도 원전 지역이다. 주민들이 우려하는 복수 호기 동시 사고 위험이나 드론 공격, 사이버 테러 등 다변화된 현대적 안보 위협에 대해 규제당국과 사업자가 얼마나 투명하고 과학적인 대책을 제시하느냐가 향후 원전 정책의 지속 가능성을 가를 핵심 열쇠다.

주민들의 목숨값을 담보로 한 일방적인 허가 강행이라는 비판을 피하려면, 소통의 문을 넓히고 신뢰할 만한 데이터를 제공해야만 한다.

결국 우리에게 남겨진 궁극적인 과제는 독립적이고 엄격한 규제 체계의 확립이다. 원안위가 정부의 원전 진흥 정책 속도에 발맞추는 ‘거수기’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학계와 시민사회의 지적을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 진정한 독립 규제기관의 본분은 전력 수급의 시급성보다 ‘안전성 검증의 철저함’을 상위에 두는 것이다.

한수원 또한 약 1800여 개에 달하는 주요 기기와 케이블을 교체하는 설비 개선 약속을 서류상의 통계에 그치지 않고, 규제기관의 현장 검사 과정에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이행해야 할 책임이 있다.

고리 3·4호기는 내년 상반기 재가동을 목표로 다시 회전을 시작할 것이다. 그러나 원자로의 불빛이 다시 켜진다고 해서 원전 안전에 대한 경계심까지 꺼져서는 안 된다. 에너지 안보라는 거시적 명분과 국민의 안전이라는 절대적 가치가 팽팽하게 맞선 지금, 대한민국의 원전 정책은 그 어느 때보다 정교하고도 엄격한 시험대 위에 올랐다.

이번 고리 3·4호기의 재가동 과정은 향후 대한민국이 원전 강국으로서 원전의 효율성과 안전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을지 가늠하는 중대한 시금석이 될 것이다.

출처 : 투데이에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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